[대한제국] 약소국 황제의 피난처... 구 러시아 공사관 ㄴ 서울 방랑기


정동에는 정동 근린 공원이란 곳이 있습니다. 정동 주민들의 쉼터 같은 곳이지요. 그 곳 가장 높은 곳에는 허연 탑 같은 예전 건물이 하나 들어서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구 러시아 공사관입니다. 구 러시아 공사관은 한러수호조약이 체결된 1885년에 착공되어 1890년 준공됐습니다. 구 러시아 공사관은 벽돌조의 2층 건물로 건물 옆에 별도의 탑을 세웠습니다. 자금은 탑만 남아있는데 탑의 입구는 반원 아치 형태이며 2층 역시 반원 아치형의 창을 냈습니다. 구 러시아 공사관이 서있던 정동 일대는 예전 공사관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던 국제도시 같은 곳이었는데 구 러시아 공사관은 정동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어 경복궁과 경운궁 등 서울 4대문 안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정동의 첨탑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구 러시아 공사관은 건물 규모나 대지 규모에서 정동에 같이 있던 미국이나 독일, 영국 공사관보다 규모면에서 훨씬 컸습니다.

구 러시아 공사관이 이렇게 큰 이유는 국제정서의 틈바구니 속의 한반도 정세와 관련이 깊은데 19세기 말 고종은 궁내에 쫙 깔려있던 친일 세력 견제를 위하여 독일이나 영국, 러시아 등 서양 세력을 이용라여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었습니다 그렇게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서양 국가를 이용했었는데 이 서양 국가 중 고종이 가장 중요시 한 곳이 바로 러시아입니다. 특히나 러시아 공사관은 경운궁을 비롯 미국, 영국 등 서양 국가의 공관 등이 집중적으로 위치한 정동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어 전체적으로 상황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곳이기도 했습니다. 고종 입장에서는 이런 러시아 공사관에 집중적으로 협조를 받으면서 친일 세력과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었습니다. 그래서 고종이 을미사변 당시 피난처로 러시아 공사관을 선택하게 된 이유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더 중요한 건 구 러시아 공사관의 탑의 동북쪽 지하실은 경운궁과 지하로 연결되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기 좋았다는 것도 있었지요.

그런 러시아 공사관이 대한민국 역사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는 일이 생기는 데 바로 을미사변입니다. 이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가 일본에 의해 시해된 후, 자신 역시 일본의 시해 위협을 받던 고종은 1896년 2월 세자와 함께 경운궁 바로 옆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게 되는 데 이게 아관파천입니다. 아관파천 당시 고종은 덕수궁과 러시아 공사관을 잇는 지하의 비밀 통로로 이동했는데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았던 이 통로로 급박하게 피신하게 됩니다. 이 아관파천은 약소국 가진 설움을 보여주던 바로미터가 됩니다.

아관파천 당시 내각도 뒤집어졌는데 친일 내각이었던 김홍집 내각이 무너지면서 친러 성향의 박정양 내각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독립협회 역시 러시아 공사관에서 창립을 선포하기도 하였습니다. 러시아 공사관은 국권 피탈 이후 1925년부터 해방 이후 1950년까지 소련 영사관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는데 6.25 전쟁 이후 폭격을 맞으며 거의 대부분 파괴된 걸 70년대 복원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구 러시아 공사관은 한국전쟁 이후 쭉 비어있었는데 90년대 한러수교 이후 러시아에서 돌려달라는 얘기도 나왔었다고 합니다. 정동길을 걸어보면 구 러시아 공사관이라고 적힌 팻말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사적 제 253호로 정해져 근대 대한민국의 역사의 장으로 남아있습니다.

덧글

  • dsd 2013/06/15 23:47 # 삭제

    아 여기 시립미술관갔다가 들러서 구경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가 주말이었어서 그런지 주변도 참 조용하고 인상에 많이 남는 곳이었습니다ㅎㅎ 옆에 교육과정평가원 보면서 고등학교때 수능공부하던 생각도 갑자기 나고, 러시아 공사관 옆에 상림원(?)인가 정확한 명칭은 기억 안나지만 그곳에서 살면 좋겠다도 싶고...덕분에 즐거운 추억 떠올리고 갑니다
  • 개미 2013/06/20 00:58 #

    dsd 님/ 정동은 둘러볼 곳이 참 많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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