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한양] 한 때는 자하문, 지금은 창의문 ㄴ 서울 방랑기


태조가 조선을 창업할 때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고 한양성곽을 축조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1395년부터 도성을 축조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요. 도성에는 동.서.남.북에 4대 문을, 그 사이 사이에 4개의 작은문을 만들었는데, 4대문 사이사이에 만들어진 문들을 사소문이라 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부암동에 있는 창의문입니다.

창의문은 성곽의 서북에 위치하여 고양.양주 방면으로 통하는 문으로, 자하문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416년, 태종 16년에 자하문을 통해 통행하면 왕조에 해를 입힌다는 풍수지리학에 의하서 한때는 폐문 되기도 했습니다만은 1506년, 중종 원년에 다시 문을 열고 통행을 재개했습니다.
창의문은 1623년에 일어난 인조반정때 의군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안으로 들어가 광해군을 폐위시키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문루가 불타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 문루는 영조 때 복원했었는데 그 문루에는 인조반정에 참여했던 공신들의 명단이 현판에 적혀 지금까지 남아있기도 합니다.

창의문은 사소문 중 현재 남아있는 2개의 사소문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현재 유일하게 원형이 남아있는 사소문이기도 합니다. 현재 사소문 중 혜화문은 1990년대 복원된 문이며 광희문은 1970년대에 복원된 최근의 문입니다. 서소문이라 불리는 소의문은 원래는 있었지만 1914년 일제의 도시계획에 의해 철거되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 지금은 서소문동이란 이름으로 남아있지요. 물론 소의문 터는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남은 사소문 중 원형이 남은 문은 창의문이 유일한 셈입니다.

한동안 창의문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잊혀져 있다가 서울성광이 복원되면서 성곽길과 함께 다시끔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서울 속 시골이라 불리는 새로운 핫 플레이스인 부암동이 가까워 창의문을 보러가기도 쉬워졌으며 한 때는 청와대 경비를 위해서 통제되던 서울 성곽길이 열리면서 창의문 방향으로 내려오는 관람객이 많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창의문 주변은 분위기 좋은 부암동 까페들도 많고 느긋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곳도 많아서 돌아다니기에도 좋습니다. 그리고 세검정을 돌아보는 것도 좋기도 합니다. 부암동을 돌아보시면서 창의문도 한번 둘러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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