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경성] 민족의 서러움이 함축되어 있는 서대문 형무소 ㄴ 서울 방랑기


서대문 형무소는 우리나라 근대 역사에선 빠질 수 없는 곳으로 대한의 독립투사들이나 일제의 탄압에 저항했던 민초들이 수감되었던 민족의 애환이 서려져 있는 서러운 곳입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조선총독부의 전신인 한국통감부가 대한제국 침략의 일환으로 조선인 범죄자 및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조선인 애국지사들을 투옥하기 위하여 1907년 감옥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1908년에 기결수들을 옮겨오면서 경성감옥으로 시작했던 서대문 형무소는 조선의 독립 운동가들이 투옥하기 시작하면서 수용공간이 부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일제는 1912년에 옛 마포교도소 자리인 마포구 공덕동 자리에 새로운 감옥을 짓고 그 감옥을 경성감옥으로 불려지게 되면서 1908년에 만들었던 구(舊) 경성감옥을 서대문감옥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23년 서대문 형무소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조선의 독립투사들이 많이 수감되었곳으로 유명했었는데 1911년 105인 사건으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으며 김좌진 장군은 1911년에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2년 6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1919년 3.1운동 발생시에는 3,000여명의 조선인을 한꺼번에 서대문형무소에 수용시킨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독립투사들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문으로, 악형으로 끝끝내 옥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독립 이후에는 미 군정 산하에서 구치소와 교도소로 계속 활용되었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에도 한동안 구치소와 교도소로 쓰였습니다. 시국사범이 가장 많이 수감되는 교도소이기도 하였으며 대한민국 정부의 비겁한 역사들(인혁당 사건, 조봉암 사건 등등)도 이 곳에서 많이 쓰여졌습니다.

서울 구치소는 86년 의왕으로 이전한 후 빈 공간으로 남아있다가 88년 서대문 형무소 기념공원 조성공사를 시작하면서 15개동 중 남아있던 9, 10, 11, 12, 13옥사와 중앙사, 나병사의 보존 공사를 실시하였으며 그 해 10, 11, 12 옥사와 사형장이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92년에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공원 개장을 했습니다. 95년에는 망루와 시구문을 복원하였으며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건축하는 등 복원공사 및 성역화 공사를 계속하였으며 98년에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 개장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금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으로 불리는 서대문 형무소는 입장료를 받아 관람하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독립문과 함께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는 이 곳에는 끊임없이 방문객이 들르고 있습니다. 내부에선 거의 제지 받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만은 사형장은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일요일 뿐만 아니라 일정한 시간에는 해설가를 동행하여 서대문 형무소의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기도 합니다.
서대문 역사 공원은 주위에 도서관도 있으며 울창한 숲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여름에는 가족끼리 역사의 현장에서 그 시절의 아픔 역사를 가르쳐 주는 것도 좋은 피크닉이 될 것 입니다.

덧글

  • 2013/02/16 17:1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2/17 13:4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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