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한성] 독립의 상징인가, 오욕의 상징인가... 독립문을 가다 ㄴ 서울 방랑기


지금 사적 32호로 지정되어 있는 독립문은 1890년대 초 서재필 등 개화파에 의해 건립이 추진되었습니다. 독립협회는 중국 사신들을 환영하던 중국 사대의 치욕스런 상징이었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의 상징을 건설하기위해 고종에게 건의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라는데... 사실 영은문은 독립문이 세워질 당시에 이미 헐려 있었습니다. 중일전쟁이 끝난 후 승전국인 일본은 영은문을 헐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독립문은 1896년에 공사를 시작해 1897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사바틴의 설계로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본따 만들어진 독립문의 현판은 지금은 희대의 매국노로 일컬어지는 이완용이 썼습니다. 사실 독립문이 건립될 당시만 하더라고 이완용은 조선의 독립에 열망이 컸던 독립열사였습니다. 독립협회 창립당시 독립협회 건립위원장에 독립협회의 2대 협회장으로도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조선 독립과 민중 계몽을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던 적이 있었으니 독립문의 현판을 이완용이 쓴 게 딱히 이상할 정도는 아닙니다만은...

현판 아래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오얏꽃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독립문 앞의 기둥 두 개는 옛날 영은문의 기둥으로서 기둥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현재 독립문 앞 영은문 기둥 역시 사적 33호로 지정되어 있지요.

지금이야 독립문이 옛 서대문 형무소랑 묶어 독립공원이란 이름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지만 사실 독립문이 일반인이 드나들 수 있게 된 것도 얼마 안 된 일입니다. 원래는 독립문 입구에 사람이 들어갈 수 없도록 작은 담이 둘러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립문은 성산대교 건설 때문에 원래 자리에서 해체하여 지금의 자리로 움직여 복원한 것인데 복원 자체가 잘못되어 무악재를 기준으로 한다면 독립문이 먼저 나와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보면 얼렁뚱땅 해체복원이란 오명을 들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옛날의 문화재 해체 복원이란 게 다 그렇고 그랬었다라고 하지만...

사실 독립문은 한국의 근대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독립문과 함께 독립신문, 그리고 독립협회, 이완용과 서재필등 여러가지 일들이 엃키고 설켜 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독립문인데 성산대교 건설과 함께 얼렁뚱땅 해버린 해체복원등 아쉬운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옛 서대문 형무소와 함께 근대 조선의 중요한 상징이 되어버린 독립문 입니다. 옛 서대문 형무소를 보러 가시면서 독립문에 대한 이런저런 일들을 같이 얘기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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