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지 하소연을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하네요... 표정당(黨)

예전에... 몇번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 블로그 주인장은 진짜 간질 환잡니다.
흔히 얘기하자면 사이비 아니라는 거죠.

간질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버려주세요
카마제핀을 아시나요?

간질 환우회에도 몇번 나가 본 바 느낀 건 간질환자들이 참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세상과 많이 부딪친 사람 일수록 더더욱 그렇더군요.
물론 저 역시 사람을 잘 안 믿습니다. 아예 안 믿을 순 없으니 가려서 믿습니다.
한번 믿게 되면 끝까지 믿습니다만은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그냥 그 사람과 친하지도, 그렇다고 부딪치지 않는 선에서 잘라 관계를 가집니다. 왜냐면 저 역시 뒤통수 맞은 경험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지요. 물론 간질 환자가 아니더라도 사람을 안 믿는 사람은 많은 거라고 생각합니다만은 글쎄요... 참 어려운 거 같습니다.

예전에는 별도로 적지 않았지만 전 간질이란 병을 받아 들이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21살 창창한 나이에 알바 끝나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도중 푹 쓰러져 버렸지요... 그 때 병원에서는 밥 잘못 먹고 체했다고 했었습니다.(그 의사도 참 돌팔입니다. 체했다고 몸이 굳어지며 쓰러지는 사람이 있었다니...) 그래서 그려려니 했습니다. 몇 개월 후 컴퓨터 하는 도중 또 쓰려졌습니다. 그 때 어머님이 굉장히 놀라셨다더군요. 그래서 지금 큰 아들이 이 멀리 타국에 나와있어도 30이 다 되어가는 데도 불구하고 걱정하십니다. 심려만 끼치고 있지요. 못난 아들입니다.

22살... 어머님과 함께 동네의 큰 병원에 갔습니다. 이상한 약을 한 달치 받았습니다. 이 약을 먹고 나면 안 와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쓰러졌는데... MRI라는 걸 찍더군요. 그때 40만원 넘게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내과가 아닌 신경내과로 내원하더군요. 그렇게 한달치 약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의사선생님께 이 약 먹고 나면 안 와도 되냐고 물었습니다.(예... 참 어리석었었지요... 그 때는 간질이란 병을 모르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의사선생님은 발작이라 하더군요. 그리고 확실하진 않지만 간질 같다는 소견을 밝혔었습니다.(그 의사 선생님은 더 큰 병원에서 근무하고 계시네요...) 그리고 평범한 인생은 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인터넷에서 간질을 찾아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병이라 궁금했습니다. 적어도 3년은 약을 먹어야 한다더군요. 그 뒤로 소견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다더군요. 하지만 평생을 먹어야 한다기도 하더군요. 이런저런 간질 정보를 찾다가 어떤 사람이 예전에 올렸던 같은 하소연 비슷한 글을 보았습니다. 간질 환자라고 얘기하더니 취업도 안되더라... 친구가 떠나더라... 믿었던 사람이 자신의 뒷담화를 하고 있더라... 참 뭣같은 병이다... 라는 글을 봤었습니다. 한참 멍하게 있었던 걸로 기억하네요...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 뒤 한 3년동안 참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진짜로 그 누군가가 적힌 대로 되더군요. 친하다고 생각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났습니다. 예... 그런 인간은 친구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그런데 정말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제 뒷담화를 하더군요. '제기 저 놈이 지랄병 환자라더라...' 뭐... 그 뒤에는 더 한 말도 나오지만 그냥 하지 않을렵니다. 아마 이 글을 보시는 분이 생각하는 만큼의 말들이 들어있을 겁니다. 대학 입학해서 가장 큰 희망은 여친을 만들어 같이 놀러다니는 거였는데 아무것도 못하더군요. 아니...안 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정말로 무서웠습니다.

한 2번 손목도 그어 봤습니다. 겁이 많아서 죽을 만큼 깊게는 못 그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좀 아팠습니다. 더 편하게 가는 방법도 몇번 생각해 봤습니다. 그렇게 두번 그어 본 게 실패하더니 그냥 되는 데로 살자. 죽을 때 되면 죽겠지... 라는 생각이 더욱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네요. 내가 꿈꿔왔던 평범한 일상의 계획은 이미 다 벗어 났습니다. 나이 30되기 전까지 학교를 졸업해서 참한 마누라와 함께 애 새끼 한 둘 낳아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평범한 아빠로서의 소원은 물건너 갔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아무 생각 없이 살았습니다.

현역 입대도 재검을 한 다음 공익으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사회복지과에서 2년을 조금 넘게 일했습니다. 저 보다 더 한 사람도 많더군요. 그래도 그 분들 중 삶에 희망을 가진 분들도 많더군요. 조금씩 생각을 고쳐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약을 먹은 지 3년이 되었습니다. 3년이 지나니까 일단은 약을 끊게 해 주더군요. 그리고 약을 끊은 지 한 달 뒤... 정확하게... 재발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아마 평생을 먹어야 될 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참 오랫동안 체념했습니다. 별로 살고 싶지도 않았구요. 저걸 계속 먹어야 하느니... 아니 편견속에서 무시 당하면서 살 바에야 그냥 죽는게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도 죽은 건 참 무섭더군요. 용기가 없어서 죽진 못했습니다. 용기가 있었다면 아마 저는 이 글을 못 쓰고 있겠지요. 그리고 공익 근무가 소집해제 된 후 여권을 만들어 동남아로 날았습니다. 한국에 계속 있어봐야 답도 없고... 그냥 해외 물이나 한번 먹으러 갈까 하는 생각이었지요. 이미 다니던 대학은 자퇴를 했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하다하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호치민으로 가는 열차를 탔었더랬지요.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냥 아주 조그만 역에서 내렸습니다. 한 밤중에 말이지요... 그래서 싼 숙소를 찾아서 짐을 풀고 멍하게 창 밖을 바라 보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니까 천천히 해가 뜨더군요. 호수 위에서 뜨는 해를 보고 있는데 어찌 그렇게 붉게 빛나던지... 웬지 이 때까지 했던 잡다한 고민들이 무상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아직 죽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었지요. 그 숙소에서 일주일을 묵었습니다. 그냥 호수에서 해가 뜨고 지는 것만 일주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학교를 다시 입학했습니다. 학구열이 불타는 것이 아니라 아마 살아나갈려면 대학 졸업장 같은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시골의 전문대에 입학했습니다. 꽤 나이가 많았었지요. 그래도 어린 동생들과 참 재미있는 2년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동생들과는 연락을 하고 지냅니다. 저 한테는 참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참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아무한테나 말을 터 놓을 수없으니 말을 터 놓을 수 있는 몇몇의 소중한 사람들이 참 소중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동남아 여행 뒤로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날 수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친은 없네요 ^^;;. 여친은 있었지만 제가 간질환자라는 말을 하기가 참 부담스러웠습니다. 깊게 만나지 못했었습니다. 다음에 만약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모든 걸 다 털어 놓고 정말 깊게 깊게 사랑해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도 아주 깊게 깊게 사랑받고 싶습니다.

전 지금 이역만리 타국에 와 있습니다. 간질 환자라고 밝혔다면 아마 KOICA에 뽑히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 혼자서 살아야 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곳에 와서도 좋은 인연을 만들었습니다. 많이는 만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을 3명이나 만났습니다. 굉장한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나의 지나간 하소연을 들어주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힘듭니다. 아마 편견이 많아서 겠지요. 제가 죽기 전에 그 편견이 깨질지는 모르겠지만 그 편견이 꽤나 단단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나의 지나간 하소연을 들어주는 사람이 3명이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입니다. 나의 외모가 아닌 나의 내면을 봐 주는 사람이 흔하지 않은요즘에 그 사람들은 나의 내면을 봐 줍니다. 나의 하소연을 들어주면서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하게 넘어가지만 어려모로 신경써 줍니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저는 나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많은 사람들을 두고 왔습니다. 어찌 보면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저는 여기서 나 자신으로 살수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너무 고맙고 행복합니다.

아마 아 글을 얼마나 읽을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숨겨진 것... 내 보이기 힘든 것... 어느 누군가에게 하소연 할 것... 그 하소연이 처음에는 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됩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 말이지요. 하지만 정말 잃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아님 이 사람이라면 털어놔도 될 거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털어놔도 좋을 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전 털어놓고 나서 어깨에 둘러면 짐 덩어리가 한 덩어리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즈금이라도 홀가분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털어 주세요. 많은 짐 덩어리가 어깨를 누르고 있으면 참 힘들더군요. 털어놓고 나서의 후 폭풍에 불안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이 두 발로 대지를 딛고 살아가자면 어느정도의 고통을 언제나 당하더군요. 조금이라도 짐을 덜어 줄 좋은 사람들은 나의 주위에 있을 것 같습니다.

웬지 주절주절 하소연을 풀고 나니 조금 더 후련해 지는 것 같군요. 하소연을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하신가요... 저라도 괜찮다면... 언제라도 하소연을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아마 하소연을 하는 사람의 짐 덩어리가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

덧글

  • 바우 2009/08/24 18:49 # 삭제

    힘들 때는 주절주절이 최고요~ ㅎㅎㅎㅎㅎ 말 졸라 많이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하지 않소~
    머~ 그 후에 공허함도 찾아 오지만~ 아무튼 화이삼이요!
  • 개미 2009/08/26 05:38 #

    바우 님/ 그러게요... 성님... 주절주절 하면 마음은 편한해 지긴 합니다.


World Friends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