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그 푸른 사과향에 대하여... -2- 국내도 볼 거 많습니다

거창에는 볼 꺼리나 즐길 꺼리 보다는
경험할 만한 꺼리가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체험 관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이번 포스팅은 수승대와 거창사건 추모공원을 소개 하고자 한다.
수승대는 아마 꽤나 많은 사람이 알 거라 생각한다.
-수승대의 명물 거북바위-

거창에서 수승대가 가지는 의미는 참으로 크다. 수승대는 거창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에 하나이자 매해마다 열리는 거창 국제연극제가 열리는 유서 깊은 곳이다. 원래 수승대는 수송대라 하였는데 백제에서 신라로 사신을 보낼 때 송별장소를 이 곳으로 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후 이황선생이 수승대의 수려함에 반하여 이름을 수승대로 고칠 것을 권하여 바위에 수승대라 새김으로서 쭉 수승대로 불려지고 있다.
수승대는 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국제 연극제때에는 사람으로 대박을 치는 곳 되겠다.
수승대의 뒷쪽에 산을 오르면 거창의 아름다운 모습도 한 눈에 볼수 있을 만큼 경치도 좋다.
-경치 좋다. 날씨가 맑으면 더 좋고 ^^-

수승대는 오래된 정자도 많다. 햇빛을 피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오리 보트를 타는 많은 사람들... 그물 낚시를 하는 사람들... 한 여름에는 수영하는 사람들도 보게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 바로 수승대이다.
-고즈넉한 정자 아래서...-

-가고 싶어지지 않은가?-

그리고 거창의 가슴아픈 과거사를 돌아볼 수 있는 곳도 소개해 볼까 한다.
'거창양민학살사건은 15세 이하 남녀 어린이가 359명, 16세 ~ 60세가 300명, 60세 이상 노인이 60명(남자 327명, 여자 392명), 무고한 양민 719여명이 당시 11사단(사단장 최덕신 준장), 9연대(연대장 오익경 대령), 3대대(대대장 한동석 소령) 병력의 총검에 무지막지하게 학살되어, 처참한 시신위에 마른 나무와 기름을 뿌려 불로 태워 버리기까지한 천인공노할 사건을 저질러 놓고 후한에 두려움을 느낀 한동석은 신원면 일원에 계엄령을 내려, 이방인 출입을 막고, 어린이 시체는 골라내어 학살 현장에서 약 2㎞ 떨어진 홍동골 계곡으로 옮겨 암매장하여 은폐를 하고, 공비와 전투를 하여 희생자가 발생된 것으로 왜곡을 하였으나,
1951년 3월 29일 거창 출신 신중목 국회의원에 의해 국회에 폭로되고, 1951년 3월 30일 국회와 내무 ・ 법무 ・ 국방부의 합동진상조사단이 구성되어 1951년 4월 7일 합동진상 조사단이 신원면 사건 현장으로 오던 중 길 안내를 맡은 경남 계엄민사부장 김종원 대령은 신성모 국방 장관과 사전에 모의하여 9연대 정보 참모 최영두 소령의 수색 소대로 하여금 군인을 공비로 위장 매복시켜, 거창읍에서 신원면으로 통하는 험준한 계곡의 길목인 수영더미재에서 합동진상조사단에게 일제히 사격을 가해 조사를 못하고 되돌아 가게 하는 등 국방의 의무를 진 군인으로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만행에 대하여,
1951년 7월 27일 사건발생 5개월여만에 대구고등군법회의는
「재판장에 강영훈 준장, 심판관에 정진환 준장, 이용문 대령, 법무관에 이운기 중령, 검찰관에 김태청 중령, 김부남 소령, 김동수 대위」로 심판부를 구성하여, 1951년 12월 15일 구형공판에 이어 동년 12월 16일 판정판시에서 9연대장 오익경 대령 무기징역(구형 사형), 3대대장 한동석 소령 징역 10년(구형 사형), 소대장 이종대 소위 무죄(구형 징역 10년), 계엄민사부장 김종원 대령 징역3년(구형 징역 7년)으로 관련 군지휘관에게 실형이 확정 되므로서 책임이 국가에 있는 거창양민학살사건은 희생자와 유족에 대해 잘못을 뉘우치기 는 커녕 기회만 생기면 탄압을 가했다.'

라는 것이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의 전말정도 될 것이다.
-거창 사건 추모 공원 내 위령탑-

솔직히 한국전 때 양민 학살은 상당히 많았던 걸로 역사가 기록하고 있다. 어찌 보면 거창 양민 학살 사건도 그 중의 하나이고 우리의 빌어먹을 아픈 역사 중 하나이다. 공적을 올리기 위한 군부가 저지른 미친 짓... 미련한 군인들이 아닌 국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그런 사건들... 가까이는 5.18이 있었고 멀리는 제주 4.3 사건이나 한국전 양민 학살 사건이 있었다. 거창 사건 추모 공원은 바로 이렇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기념공원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피 뭍은 역사 위에 새로운 피로 다시 역사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분들의 아픔을 우리는 기억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분들이 겪었던 두려움과 고통을 우리는 알수 있었을까... 지금의 우리는 거창에서 죽은 700여명의 혼 위에 나라를 얹고 사는 것은 아닐까...

넋이여 아직도 잠 못 이루고 있는가

신달자

그렇다 그 날은 시간조차도 갈기갈기 찢겨져 피 흘리고 있었다.
시간을 어찌 깁고 기워 새 시간을 만들 것인가.
그러나 피 흘리는 그 시간보다야 돌릴 수 없는 것이 우리들 쓰라린 마음이 아니겠느냐.
우리들 억장 무너지는 가슴이 아니겠느냐.
그 살점 뜯기는 시간을 밟고 시간은 빠르게도 지나갔구나.
벌써 51년 무슨 이런 거짓말 같은 세월이 있다더냐.
아직도 그 생생한 영혼들의 부릅뜬 눈은 감지도 못했는데
그 영혼들 위해 속시원한 한풀이 한번 못하고
잔인하게도 세월은 그렇게 뜀박질을 하고 지나갔구나.
그러나 넋이여!
고이 잠드소서.
우리 고향 땅 고향 하늘 시퍼런 소나무며 흐르는 푸른 물이
역사의 증인으로 소리치는 그날이 오고 오고 오고야 말 것이므로
가신 넋이여!
반세기 한의 눈물 그대 넋들 잠재우는 흐느끼는 노래나 될까 몰라
오늘은 저 하늘 구름 한 점이 비를 껴안고 홀로 울음을 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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